MEMORIES

[DUGOUT Interview] 휘문고등학교 김영직 감독

  • dugout***
  • 2019.10.10 12:04
  • 조회수 393

생존게임의 중심 ‘인성야구학개론’

 

전장에서 승전고를 울린 장군은 널리 이름을 알린다. 특히 위기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승리를 이끈 수장에게는 ‘명장’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존경의 뜻이 담긴 것이다. 부임 첫해 봉황대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우승을 이뤄낸 휘문고등학교 김영직 감독의 이름 앞에 이 호칭이 붙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기기 위해 상황에 따른 전술을 짜는데, 그의 풀이 가운데 가장 돋보였던 것이 심리전이었다. 무조건적인 전진보다 선수단의 중심에 먼저 ‘하나’라는 인식을 심은 결과였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표권향 Location 휘문고등학교


김영직_(1).jpg

 

#경쟁이 이뤄낸 다르지만 같은 야구

 

올해 휘문고는 새로운 감독으로 김영직 감독을 영입했다. 그는 2017년 포항제철고등학교를 개교 이래 첫 청룡기 결승 무대까지 올리며 명장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휘문고에 오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당시 바깥 이야기로 어수선했던 휘문고에 부임한 김영직 감독은 제일 먼저 선수들을 한데 모았다. 선수들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김영직 감독은 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서로 간에 믿음을 정착시키는 데 집중했다.

 

훈련을 거듭하면서 내 옆의 동료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선수들이 감독의 뜻을 따랐고, 이를 실천한 결과 3년 만에 봉황대기 정상에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세계에서도 휘문고의 분위기를 인정한 듯 4년 연속 1차 지명 선수 등 예비 프로선수로 휘문고 보석들을 뽑았다.

 

봉황대기 우승을 축하한다. 3년 만에 정상에 오른 소감이 어떤가.

휘문고에 온 지 10개월 정도 됐는데 얼떨떨하다. 생각한 것보다 선수들이 잘해줘서 빨리 우승한 것 같다. 3학년 선수들에게는 마지막 시합이었는데,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모두 정말 고생 많았다.

 

연장 10회까지 이어진 힘겨운 싸움이었다.

3학년들에게는 진학 문제와 프로 문제가 있어서 조금 느슨해질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스스로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와서 본인들이 끝까지 학교의 명예를 위해 경기를 치르겠다고 하더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기분이 좋았고 이에 따른 결과도 좋아서 정말 기뻤다.

 

부임하자마자 우승을 이뤄냈다. 대회 시작 전에 기대했는가.

우승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3학년 선수들의 기록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야 했다. 한 게임 한 게임 하면서 이기는 경기를 하니까 선수들도 자신감이 생겼고 3경기 정도 하고 나니 본인들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더라. 강팀들이 다른 팀에게 지는 상황이 나와서 운도 좋았다.

 

대회를 치르면서 힘든 상황도 있었다. 언제가 가장 고비였는가.

준결승 때다. 이민호가 우리 팀 에이스인데 청소년대표로 빠져 있었다. 그런데 다른 투수들이 그 공백을 느끼지 못하도록 잘 던져줬고 1학년 투수들까지 잘해줘 선수단 조화가 잘 이뤄진 것 같다.


김영직_(4).jpg

 

부임 첫해부터 성적이 좋다. 감독으로서 출발이 순조로워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 같다.

지도자는 우승하고 딱 하루만 좋다. (웃음) 다음날부터는 내년을 걱정한다. 다음 해 선수 구성을 고민하다 보면 걱정이 많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포항제철고 때도 첫 청룡기 준우승을 기록했다. 휘문고에서는 우승을 이어가고 있는데, 우수한 성적을 이뤄내는 비결이 있는가.

비결이라고 하긴 조금 그렇고…. 보통 감독들이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선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강제적이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틀 안에서 한다면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는 편이다.

 

휘문고와 포항제철고의 스타일이 다르다. 선수단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사실 포항제철고는 선수 구성에서 인원이 적다. 엄밀히 따지면 선수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량은 휘문고보다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선수들끼리 조직력이 있다. 인원이 적다 보니 선수들이 저학년부터 시합에 나가고 경험도 많이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휘문고는 가지고 있는 기량은 좋지만 3학년 이전까지 시합에 나가기가 어려워 실전 경험이 적다.

 

완전히 다른 두 학교인데, 휘문고는 어떻게 지도했는가.

1학년과 2학년에게도 기회를 줬다. 학년에 상관없이 무조건 잘 하는 선수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붙여 출전시켰다. 올해 같은 경우 사실 2학년보다 1학년이 경기에 더 나갔다. 이러다 보니 1학년은 우리만 잘하면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고, 2학년은 1학년에게 안 밀리기 위해 악착같이 맞섰다. 이런 경쟁력 덕분에 좋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영직_(2).jpg

 

#정상을 향한 환상의 팀워크

 

야구를 흔히 정글에 비유한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현장에서 개인의 고집과 독단적인 판단을 내세우면 전멸이다. 출구를 찾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야구는 타 종목에 비해 협동심을 더욱 요구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팀플레이가 생존을 위한 열쇠다. 9명의 선수들과 벤치의 호흡이 맞아야만 승리를 차지할 수 있다.

 

김영직 감독은 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험난한 수풀을 뚫기 위해 선수들에게 팀워크를 강조했다. 자칫 개인플레이로 경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것을 일깨우는 데 노력했다. 선수들은 감독의 지도 방향을 따랐고 경험을 통해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자연스럽게 팀 분위기가 잡혔다.

 

위치 때문인지 휘문고만의 이미지가 있다. 밖에서 봤을 때와 지금의 휘문고는 어떤가.

휘문고를 처음 본 것은 작년 포항에서 열린 서울시협회장기 전국대회였다. 휘문고가 포항에 내려왔는데 연습 장소가 없어서 같이 훈련했다. 선수들의 몸은 정말 좋은데 팀 분위기에서 뭔가 만들어지지 않고 흐트러진 느낌을 받았다. 사실 저 선수들은 관리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휘문고에 와서 얼마 동안 지켜보니 선수들이 못된 것이 아니라 그런 분위기에 익숙했던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통제할 땐 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던 것 같다.

 

쉽지 않았을 텐데, 선수들을 어떻게 다듬었는가.

이곳에 처음 와서 희생이란 말을 강조하며 이를 우선으로 실행했다. 휘문고에 올 정도면 중학교에서 어느 정도 했던 선수들이다. 거기에서도 잘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다른 이야기는 못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 와서 순위가 정해지니까 서로 트러블이 생겼을 것이고 이것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런 모습만 보면 선수들이 못됐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겪어보면 진짜 순진한 아이들이다. 지금은 이런 문제들이 많이 없어졌고 팀워크가 생겨서 이번에 우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된다.

 

선수양성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첫째 팀워크라고 생각한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단체운동에서는 나만 잘 나서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선수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잘한다고, 나 잘났다고 나 혼자만 생각한다면 절대 팀은 이길 수 없다. 스포츠에서 유일하게 희생플라이와 희생번트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 야구다. 그만큼 희생을 강조한다. 이런 것을 할 줄 알아야만 팀워크가 좋아진다.


김영직_(5).jpg

 

학부모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제일 중요할 수 있다. 사실 휘문고에 와서 부모들을 많이 못 만났다. 인사는 했지만 이야기를 해본 부모는 그렇게 많지 않다. 휘문고에 맨 처음 왔을 때 부모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부모와 감독이 만날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겨울부터 내년 봄까지 동계훈련을 열심히 할 것이며 시즌 들어가서 좋은 기량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이 시기에 프로와 대학 진학으로 면담하는 것 외에는 선수의 부모를 만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휘문고는 동문회의 파워가 세다. 동문회원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동문회의 지원에 항상 감사하다. 이번에도 우승 축하연을 준비해줬다. 현 동문회 사무국장과 동기다. 그 친구와 소통을 많이 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야구만 하면 됐지만 요즘은 수업도 모두 소화해야 한다. 좋은 점도 있지만 힘든 점도 있을 것 같다.

수업도 다 하지만 운동장 사정도 좋지 않다. 이 조그마한 운동장조차도 중학교와 같이 써야 하는 상황이어서 상당히 어렵다. 모든 학교가 같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만 불합리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운동장 시설이 조금 열악해서 훈련을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이 아쉽다.

 

명문고인 것에 비해 훈련시설이 많이 열악하다.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

오늘 같은 경우도 오후 4시 30분에 선수들이 모인다.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연습하고 저녁을 먹으면 사실상 야간훈련밖에 못 한다. 끝나면 밤 10시인데, 선수들도 힘들고 코치들도 고된 하루를 보내는 셈이다.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조금 안타깝다. 학교 측과 동문회에서 보완 계획은 있으나 대공사인 만큼 말처럼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시스템이 이렇게 된 이상 학교 공부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부임 후 최동수를 인스트럭터로 기용하는 등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동수는 내가 부탁했다. 인스트럭터라면 급여를 줘야 하는데 사실 재능기부 형식으로 도와주고 있다. 기술보다는 수시로 와서 선수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선수들을 위해 개인 시간을 빼줘서 참 고맙다. 선수들도 최동수라는 선수를 좋아하고 그의 생각을 잘 따라서 나로서는 코치 한 명이 더 있는 것 같아 든든하다.

 

고등학교 감독은 무거운 책임을 지닌 자리다. 그 부담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가.

아마추어를 하면서 정직하자는 마음 하나로 임하고 있다. 프로는 선수들의 훈련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면 되지만 아마추어는 그 외에도 할 일이 많다. 이러한 것들을 하다 보면 무리수가 올 때가 많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정직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아마추어에서 시작했다. 아직 이 신념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영직_(6).jpg

 

#야구만큼 중요한 너희들의 인생

 

실업팀을 거쳐 프로 데뷔, 남들보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노장의 투혼은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새겨졌다. 90년대 흔하지 않은 좌타자였던 김영직 감독은 54안타 40타점(1990시즌), 53안타 40타점(1994년)을 기록, 안타 수에 비해 타점이 높았다. 주로 대타자로 나서 출장 기회를 보장받진 못했지만 필요한 순간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전문 요원이었다. 1994년 태평양에 흐름을 끊긴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 방망이에 불씨를 지핀 주인공 역시 김영직 감독이었다.

 

어쩌면 조명 받지 못한 자리의 위상을 높인 인물이다. 고비 때마다 승리의 쐐기를 박은 김영직의 활약으로 대타자의 의미는 퍼즐을 완성시키기 위한 조각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시간이 흘러 21세기의 김영직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퍼즐을 맞추고 있다. 지도자로서 또 다른 김영직이 ‘야구인 사전’에 기록될 제자이자 후배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선수 시절 주목받지 못했지만 임팩트가 강했다. 과거를 돌아봤을 때 본인은 어떤 선수였는가.

프로야구를 말하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잘했던 스타선수들이 많았던 반면 나는 스타가 아니었다. 하지만 팀원으로서는 내 역할을 다 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LG에서 두 번의 우승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기술적으로 한 시즌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지만 중요한 시기에 한 포지션을 맡았다는 것에는 만족한다.

 

‘전문 대타’라는 뜻을 바꾼 장본인이다. 맡은 역할마다 책임감이 굉장했던 것 같다.

이광환 감독님이 중요한 시점에서 많이 써줘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게 내 역할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성적이 좋다보니 거기에 빠져들었다. 당시 코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 잘 쳐서 내일 선발로 내면 하나도 못 친다. 너의 역할이 그것인가 보다’고 했다. (웃음) 중요한 순간에 잘 쳐서 다행이었다.


당시 타석에 섰을 때 집중력이 대단했다.

그런 쪽으로 보면 끝내기 만루홈런, 대타 만루홈런, 끝내기 안타 등 의외로 그런 기록들이 많다. (웃음)

 

이런 경험이 선수들을 지도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선수들에게 ‘야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학교생활을 하는 것도,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프로가 다가 아니라는 것도 강조한다. 모두 프로가 될 수는 없지만 자기 역할이 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도 이야기해준다. 내가 겪은 경험을 전하는 것이다. 그때의 시간이 연장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들은 어떻게 관리하는가. 상담해주거나 같이 시간을 보내는 편인가.

사실 아마추어에서는 참 힘든 부분이다.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개인적으로 조언하면 다음날 오해를 받는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정식게임에는 못 나가더라도 연습경기에서는 거의 모든 선수들을 기용하는 편이다. 1학년, 2학년도 언제든지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내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이다.


김영직_(3).jpg

 

인생이 달린 고등학생들이다. 특히 지금 3학년들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다.

휘문고에서는 9명이 지명을 받지 못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야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학생은 학교라는 틀 안에 있지만, 사회는 내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선수들이 야구하면서 흘린 땀과 생각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야겠지만… 바람대로 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야구했던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성공하리라고 믿는다. 절대 실망하지 말고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 밀고 나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응원한다.

 

우승 멤버들에게도 한마디 부탁한다.

‘일찍 만났더라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 10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해주고 잘해줘서 고맙다. 프로에 간 선수들 외에 대학에 진학하는 선수들을 더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프로든 대학이든 2년제 대학을 가든 야구로 성공해야겠다면 지금과 같은 각오로 임해라. 꼭 성공할 것이다. 이제 스무 살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면서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뭐든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휘문고와 이뤄나갈 일들이 많을 텐데 마지막으로 각오 부탁한다.

휘문고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특히 지금 1학년과 내년에 들어올 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좋은 전략을 구상해서 꾸준히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 강한 팀워크를 다져 좋은 팀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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